홈스쿨링을 시작한지 10개월째가 되어간다.

1년 동안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에 대해서 정리한 글을 쓰다가, 잠깐동안 '만약 내가 중학교에 가게 되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간단하게 몇 줄 적어본다.



전에도 올렸던 사진. ^.^


정확하게, 딱! 1년 전인 2010년 12월 9일 이후로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학교 한자시험이 끝나고 나면 새 학년이 시작될 때까지 수학 빼곤 공부를 절대로 하지 않는 게 내 규칙(?)이었다. 

그러다가 졸업식 이후로는 아예 수학이고 뭐고 다 놓아버리곤 미친듯이 놀았다. 밖에 나가지도 않고, 어렸을 때라면 맨날 붙들고 있었어야 할 책도 안 읽고, 그냥 아이팟만 했다. 홈스쿨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월 23일, 이사 간 다음날부터였다.

처음 엄마랑 내가 짠 계획은 8월에 검정고시를 보고, 그 이후로 미친듯이 학교 진도를 나가는 거였다. 그런데  이 검정고시 공부라는게, 암만 해봐도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너무 지겨웠다. 문제집 종이도 내가 싫어하는 까끌까끌한 종이였고, 수학은 물론 내가 좋아하는 사회도 뭐가 뭔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이렇게까지 공부하기 싫었던 적이 없다.

홈스쿨링도 막 시작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데다가, 전에는 집 앞에 바로 있던 롯데마트랑 잠실 교보문고도 이젠 멀리 떨어져 있으니 밖에 나가기도 싫어서 살이 뒤룩뒤룩 쪘다. 어찌나 쪘는지 불과 2주 전만 해도 입을 수 있던 청바지를 입지 못하게 되었고, 살이 틀 정도였다. 내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결국 엄마와 합의를 봐서, 4월부터는 학교 진도를 따라가고 2년 뒤에 검정고시를 보기로 했지만 여전히 전에 살던 동네가 그리웠다. 5월 때까지는 그래서 어디 나가기도 싫어하고, 엄마한테 꾸중도 듣고, 울기도 엄청 자주 울었다.

그러다가 여름이 왔다. 이제 잠실은 '내가 불과 6개월 전에 거기에 살기는 했나?' 싶을 정도로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가고 있었고, 어느새 '난 불행해.'라는 내 생각은, '난 행복해!'로 바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하루를 보다 더 즐겁게 보내게 된 건, '행복하게 살아야 해!'라고 외치는 내 머리 때문이었다. 나는 행복에 엄청나게 집착한다. 이제 겨우 14년을 살았고, 앞으로 70년 이상은 살텐데, 70년을 불행하게 보낼 생각을 하면 너무 끔찍했다. 그래서, 내가 '아, 난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들이 가는 것도 점점 더 즐기게 되었다.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예쁜 악세사리 만드는 것도, 인스타그램으로 외국인 친구랑 같이 수다떠는 것고 , 북촌한옥마을에서 엄마랑 이곳저곳 헤메면서 돌아다니는 것도  즐겁다. 이젠 하루하루가 늘 신난다.

만약, 내가 홈스쿨링을 하지 않고 중학교에 가게 되었더라면?

나는 유치원 다녔을 때도, 초등학교 다녔을 때도 모두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다. 특히 6학년 때는 반 친구들이 너무 착하고 좋아서,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내 생각엔 난 중학교에 다녔어도 정말 즐겁게 지냈을 거다. 방학 때마다 만나는 내 친구가 얘기하는 걸 들어 보면 일진 애들 하는 게 들어만 봐도 무섭지만, 어디에서든 잘 적응하는 나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는 홈스쿨링을 해도 즐겁고, 학교에 가도 즐겁다는 거다. 

2011년은 여태까지 살아온 14년 인생 중 가장 힘들면서도 행복했던 해였다. 처음 6개월은 어쩔 줄 몰라 하고 그냥 낭비해 버린 건 아쉽지만, 정신 차리고 나머지 6개월을 순탄하게 보낸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도, 2011년을 잊지 못할 거다. 특히, 이사 간 날 (2월 22일)이랑 정신 차린 날(7월 28일)은! :)



아래 링크는, 내가 홈스쿨링에 대해서 쓴 글들이다.


2011/02/07 - [꿈꾸는 방/일기장] - 중학교 입학 배정 통지서를 받고 나서... (10년 동안 꿈꿔 온 중학교에 대한 아주 긴 글)


2011/03/11 - [꿈꾸는 방/일기장] - 홈스쿨링을 했던 약 2주동안에 있었던 일들


2011/03/28 - [꿈꾸는 방/일기장] - 홈스쿨링 한달째-혼자놀기의 신이 되다! (+일기)




COMMENT
5

  1. 채채맘

    겨레야, 자신을 다듬어가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어제 우리딸한테 네 사이트를 멘토로 추천해줬어.

    언제나 힘내렴. 홧팅!!

    2011.12.15 12:03 edit/del reply
    • BlogIcon 세상 뛰어 넘기 장 상

      제가 글재주가 없어서... 제 블로그가 친구한테 멘토로 추천되다니... 쑥스러우면서도 기분 좋네요. ㅎㅎ
      고맙습니다! ^^

      2011.12.16 11:34 신고 edit/del
  2. 하하..

    생각 날때마다 들리는 블로그인데...

    항상 배우고 갑니다!!

    ^^ 정말 너무 어른스러우시네요.


    저보다 훨씬 어리신 분이 저보다 훨씬 어른스럽게 사시니깐...



    내년에는 더 좋은 일만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화이팅!

    2011.12.19 23:50 edit/del reply
  3. 하늘빛

    교육과 배움에 관심 있는 사람입니다. 홈스쿨링의 당사자(이곳), 아버지(4ty1.tistory.com), 어머니(goodmom.pe.kr)께서 모두 인터넷 출판을 하시네요. 덕분에 홈스쿨링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과 정보를 얻어갑니다. 세상을 뛰어 넘는 이야기를 들으러 이따금 들르겠습니다.

    2011.12.20 16:18 edit/del reply
  4. 비밀댓글입니다

    2012.01.22 13:52 edit/del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