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8 영화

영화2019.08.27 18:15

봉오동 전투 (2019) 

 

 

 

예고편을 본 적이 없어서 내가 감을 못 잡았던건지 냉철하되 차분한 시선에서 촬영한 영화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조금 산만해서 아쉬웠다. 내가 기대한 건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이미 소문을 듣고 구글링한 이미지만으로도 기가 빨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지독하게 찍은 영화인 '컴 앤 씨' 비스무리한 영화였기 때문에.... 물론 봉오동 전투의 경우에는 우리가 승리한 역사에 해당하니 '컴 앤 씨'와는 다소 다른 입장에서 제작을 해야겠지만.

그래도 억지로 눈물 쥐어짜는 장면도 많이 없었고 뭐랄까... 진창같이 싸우는 장면 하나는 정말 잘 찍었다. 일단 나는 한국사 소재로 나온 영화만 보면 국뽕영화라고 욕하는 리뷰들에 몹시 신물이 나기 때문에 이 영화의 손을 들어 주고 싶다. 

 

 

 

 

 

박쥐 (2009)

 

 

 

 

 

 

 

보는 중에는 이게 무슨 내용이야... 싶었는데 다 본 뒤에 곱씹어 볼수록 장면 하나하나가 뇌리에 선명히 남아서 쉽게 떨쳐지지가 않았다. 맨발로 뛰어다니는 태주에게 신발 신겨주는 장면에서 한 번 치였고 막 날아댕기면서 사람들 피 빨고 다니는 태주에게 한 번 더 치였으며 마지막 장면에서 한 번 더 치였다...
올드보이는 솔직히 내용 자체가 너무 불쾌해서 잘 만든 것과는 별개로 좋아하지 않고 (내가 기생충에 느끼는 감정과 같음) 다른 영화들은 재밌겐 봤어도 딱 재밌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이 영화는 박찬욱 영화 중에서 제일 평가절하된 것 같아서 아쉽다. 오히려 사람들이 말하는 박찬욱 특유의 예쁜 미장셴+기괴한 분위기+고뇌하는 주인공 구조가 가장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생각함. 일단 주인공이 자기 인생 꼬아 버린 다음에 자기가 싼 똥 자기가 치우겠단 식으로 전개되는게 딱 내 취향이었고(ㅋㅋ) 처음 경험하는 해방감에 젖어서 미쳐 날뛰는 주인공들의 심리묘사를 무척 잘했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보고 나서는 아마도 자유라는 것은 결국 또다른 새로운 구속을 향한 해방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레베카 (1940)

 

 

 

 

 

 

맥심의 아내인 드윈터 부인 역이 비비안 리에게 돌아가지 않자 로렌스 올리비에가 조앤 폰테인을 엄청 괴롭혔다고 하던데 이것 때문인지 레베카의 모습에 비비안 리를 대입하고 보면 마치 조앤 폰테인이 비비안 리에게 비교당하는 심정으로 주눅들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 같아 몰입감이 엄청나게 높아진다.

하지만 후반부부터가 너무 지루함... 드윈터 부인이 느끼던 심리적 부담감이 초반만큼 쫀쫀하게 느껴지지도 않고 갈수록 이야기도 억지스럽게 전개된다고 해야하나. 끝으로 갈수록 많이 아쉬웠다. 'haunting'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원작의 결말에 비해 영화의 결말은 어떻게든 깔끔하게 끝을 내서 관객들이 애간장을 태우는 대신 미련 없이 극장을 나서게 만들려고 한 듯 너무나도 전형적인 헐리우드 고전 영화 같았다.

어딘가 예민해 보이는 늙은 부잣집 남자와 결혼해 대저택에 입성한 젊고 평범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에서는 '팬텀 스레드'와도 비슷하다. (실제로 PTA가 팬텀 스레드 관련 인터뷰를 할 때 레베카 언급을 하기도 했다) 다만 레베카의 드윈터 부인과 팬텀 스레드의 알마는 자기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안기는 늙은이 남편에게 취하는 태도가 정반대로 나타나는데, 어쩌면 2학기 때 소논문에서 이 두 작품을 비교분석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차 (2011)

 

 

변영주 감독이 우리 벗이라는 걸 알게 되고 본 영화. 사실 나는 신하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왠지는 모르겠지만 기생충에서 너무 재수없지 않게 재수없게 구는 금수저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미운털이 박혀벌임;;) 이 영화를 여태 미루고 있었고 그냥 김민희가 연기를 잘 한 영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진짜로... 김민희가 연기를 잘하더라.... 

보통 이렇게 홀연히 사라진 사랑스러운 아내를 찾아 나서는 남편의 이야기는 아내를 찾는 과정에서 그녀가 매우 추잡스러운 과거사를 지닌, 더럽고 못되처먹은 망할 요부년이다... 라는 결말을 내리고는 하는데 (대표적으로 '나를 찾아줘'가 있다. 처음 그 영화를 봤던 당시에도 에이미를 욕하는 리뷰가 무척 많아서 대체 남편놈이 싸지른 똥은 생각 안하고 사람들이 왜 얘만 욕하는 건가 의문이었음) 화차의 경우에는 경선이 이름을 속이고 살게 된 과정에서 이런 연출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여성, 특히 그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힘이 없는 여성의 위치가 어떠한지를 보여줘서 오히려 경선을 동정하게끔 만들었다. 원작 소설에서는 이런 요소가 거의 없고 남편은 매정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며 아내는 끝까지 신비로운 이미지로 남는 모양이던데 이렇게 전형적인 팜 파탈 이야기에 약자가 겪는 고통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다른 반응을 이끌어낸 각색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뱀발) 사라진 아내 찾아 떠나는 남편 이야기를 언급하고 나니 떠오른 건데 사라진 남편 찾아 떠나는 아내 이야기는 대체로 전자와 달리 오히려 절절한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서사의 대표적 사례로는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꼽을 수 있겠다.

 

 

 

 

김복동 (2019) 

 

 

평화를 위해 투병 중에도 위안부 피해자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셨던 할머니의 의지와 용기에 펑펑 울었다. 이런 다큐멘터리에서 작품성을 따져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의문이었고 (그래서 별점을 매기지도 않았지만 굳이 매기더라도 이 영화는 작품성을 따지기보다는 한 개인의 삶과 우리 사회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근처에 상영관이 없더라도 꼭 극장을 찾아서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대에 접어든 이래 페미니즘 안에서도 수많은 논의가 오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 안에서도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수많은 입장 중에서도 '나는 그래도 국가보다는 여성 인권이 우선이다'라는 입장은 항상 나를 혼란스럽게 했고 내가 양쪽을 모두 돕는 것은 불가능한가, 어느 한쪽을 택하면 다른 한쪽은 짓밟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낄 때도 많았다. 이런 입장에서는 일본 불매도 여성 인권 신장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운동으로 취급될 여지도 얼마든지 있었고, 실제로 가끔 인터넷을 들락거리다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날 할머니의 삶을 영화로 보고 난 뒤에는 국가 없이는 여성 인권도 결코 신장될 수 없다고, 내가 '한국인'으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어야 '여성'으로서의 나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질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수십년 전에 김복동 할머니를 포함해 수많은 여성들은 대한민국 국민일 수 없었고, 나라가 없었기에 일본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했다. 나라를 되찾고 나서도 이 분들은 여전히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타국과의 전쟁이나 내전을 겪은 국가들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겪은 사례는 매우 많다. 국가가 존재하지 않고, 국가가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상 여성은 가장 위태로운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런 점에서라도 나는 나라를 지키려는 행동이 '국뽕' 따위로 치부되지 않고 소외계층의 인권을 지키기 이전에 필수적으로 이행되어야 할 전제조건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집 (2019)

 

 

우리들을 정말 재밌게 봤기 때문에 윤가은 감독의 신작 소식에 한참 전부터 무척 기대했던 작품이다. 우리들이 워낙 그 나이대의 여자아이들이 겪는 일들을 무척 생생하게 잘 표현했기 때문에 전작만큼의 재미는 덜했지만 '온전한 우리집 하나 갖지 못한 불쌍한 아이들의 불행 포르노 또는 신파극'을 만들지 않고 '우리집이 없어서 조금은 풀이 죽어 있어도 언제나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줘서 좋았다. 극중 아이들 나이대에선 우리 가족이 겪는 힘든 일을 대충 눈치를 채고 여기에 불안감을 느끼더라도 항상 밝은 모습만큼은 잃지 않는 법이니까 (사실 내가 이렇게 감히 일반화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내 경험상으로는 그렇다...). 애기들이 연기도 정말 잘하고 넘모 귀여웠다....♥

 

 

 

 

검은 수선화 (1940)

 

 

 

 

 

오리엔탈리즘의 끔찍한 혼종...이지만 (대체 여기가 인도인지 중국인지 알 수가 없고 백인들이 아시아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거의 다 끌어다 모은 듯함) 기묘하고 재밌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어릴 적 여름밤에 듣던 옛날 이야기에서 느끼던 묘한 분위기를 체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클로다가 과거를 회상할 때 눈빛이 너무 아련해서 클로다의 이야기에 더 중점을 두었더라면 영화가 더 재밌지 않았을까 싶다. 루스가 갑자기 흑화하는 전개는 좀 너무 급작스럽게 느껴져서 오히려 영화를 산만하게 만든 것 같다. 
미드소마가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던데 아리 애스터가 이거 보고 난 다음에 낯선 오지에서 서서히 미쳐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카프카 (1991) 

 

 

 

 

 

 

이런 영화 넘모 좋다...♥♥ 요새 보는 영화마다 다 마음에 들어서 방학 중에 유독 평점을 다 퍼주는 느낌이 드네.
테리 길리엄의 브라질과 느낌이 비슷한데 브라질은 너무 정신없어서 지루하게 봤던 반면 이 영화는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연으로 나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느낌이라 훨씬 재밌게 봤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나사가 빠진 듯하면서도 어딘가 섬뜩해서 매력적이었음. 브라질에 비해 평가가 너무 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내가 '변신' 외에는 카프카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카프카의 삶이나 작품에서 몇몇 소재를 빌린 건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온전히 이해하진 못한 것 같다. 카프카 소설을 깊게 들이파고 나서 다시 보면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장면들이 많을듯. 안그래도 지금 미뤄놓은 책이 산더미인데 이렇게 카프카까지 영업을 하면.... 답이 없다....
+) 중간중간 갑툭튀하던 사람 공포감 조성하려고 만든 캐릭터 같은데 뭔가 뻘하게 웃겨서 한밤중에 혼자 쪼갰다.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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