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4일부터 엄마와 함께 시작했던 점자도서관 타이핑봉사를 마치고 드디어 오늘 제출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타자연습의 왕으로 반에서 전설이었던 나는 (ㅋㅋ) '타이핑은 자신 있다!'라는 생각으로 봉사를 신청하고, 같이 신청했던 엄마도 봉사를 같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3월 12일날, 점자도서관으로부터 몇 가지 지켜야 할 사항에 대한 교육이 있으니 14일날 점자도서관으로 와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미 며칠 전부터 '그냥 도서관도 아니고 점자도서관인데.. 엄청나게 크고 으리으리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나는 차에서 내리고는 많이 놀랐다. 전에 집 근처에 있었던 어린이도서관처럼 예쁜 새 건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새 건물이라고 하기엔.. 조금 허름하다고 할 수 있는 건물이었다. 그리고, 도서관 안에는 점자 책을 읽고 있을 거고, 겉모습은 우리가 읽는 책과 똑같지만 안은 점자로 되어 있는 책들이 분류되어서 나란히 책꽂이에 꽂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에 들어가서 보니 '점자 책을 만드는 인쇄소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점자도서관이 있는 건물이다. 그땐 내가 상상한 모습과 너무 달라서 '헐!'이라고 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을 정도의 건물은 아니다. ^^;


처음에 엄마랑 같이 "지겨워서 졸면 어떡해~"라면서 좀 걱정했는데, 다행히 지겨운 수업은 아니고, 간단하게 '제목은 몇 칸 띄어쓰고, 무슨무슨 글씨체로 쓰고, 한자는 생략한다.'등의 규칙만 설명하는 거라서 금방 끝났다.

참, 나는 수업을 듣는 내내 내가 점자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을 내 컴퓨터에 설치해 놓고, 나중에 책 타이핑을 마치면 직접 점자로 변환시키는건 줄 알았는데, 수업이 거의 끝날 무렵에야 나는 그냥 타이핑만 해서 도서관에 이메일로 보내고, 도서관에서는 내 글에서 틀린 부분들을 교정한 다음에 점자로 변환시키는 거였다.

그러고 나서 받은건 교육을 담당한 팀장님이 주셨던 포도주스(사진에는 안 나왔다.), 점자도서관 팜플랫, 자료집, 그리고 명함이었다. 명함도 그냥 평범한 명함이 아닌, 점자가 찍혀 있는 명함이라서 엄마랑 같이 한참을 만져봤다. 그 이후로 한동안 엄마랑 내 눈에는 점자가 찍힌 물건들이 들어왔다. ㅋㅋ



입력 봉사량을 배당 받을 때 엄마께서  하루 24시간 동안 쉴 시간이 부족할 지경인데도 또 봉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셨는지 "한 권 갖고는 나눠서 하자."라고 주장하셨는데, 키보드를 빨리 붙잡고 싶은 의욕에 불타오르던 나는 엄마에게 "한 명당 한 권씩 하자."라고 고집을 피웠다. 결국, 엄마께선 집안일+내 공부 가르치기+봉사로 한 달 가량을 엄청나게 고생하셨다.

엄마랑 내가 타이핑하게 된 책은 '장군의 아들 김두한 8권'이었다. 처음엔 의욕이 넘쳐나서 하루에 5페이지가 넘도록 했는데, 나중에는 타이핑하다가 딴길로 새면서 한시간 내내 인터넷만 하는 일이 발생하더니,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내가 네다섯살 때쯤에, '야인시대'라는 드라마가 한동안 방영되었다. 그때 김두한을 처음 알게 되고, 김두한이 '완전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장군의 아들 김두한'을 타이핑하면서 '완전 멋있는 사람인...가...?!'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자기 부하가 화냈다고 괜히 자기도 삐져서 툴툴거리고.. 자기 부하가 칭찬받고 자기는 관심받지 못했다고 부루퉁해지고..) 가끔씩은 엄마랑 같이 "그 책에서 어떤 사람 이름 웃기지 않아?" "엄마 시작하는 부분에서 김두한이 깃발 달다가 떨어지지 않아?"라는 등 책 얘기도 많이 했다. 

그렇게 열심히 타이핑을 하고 페이지를 넘겨 가다 보니, 금세 한 달이 다 지나가 버렸다. 막 마무리를 시작했던 나는 엄마가 요즘 열정적으로 타이핑을 하는 걸 보고 '몇 페이지나 했지?'라는 호기심에 엄마 문서에 들어가 봤는데..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내 반도 못 따라오던 엄마 글이 어느새 내 글을 거의 5페이지나 앞서 있었다. 약이 올랐던 나는 부리나케 엄마를 따라잡고 엄마보다 하루 더 일찍 봉사를 끝냈다. :)


그리고 입력이 모두 끝나자, 엄마와 함께 교정을 시작했다. 봉사하는 동안 엄마께선 글을 중얼거리시면서 다시 한 번 글을 확인해 보시고, 나는 수시로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글을 확인해 봤는데도, 교정할 때 보니 오타가 엄청났다.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아래한글에서 한글이 잘 나오다 말고 갑자기 한글이 'tkasldf' 이런 식으로 영어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오타들도 많았고, '김두한'을 '침두한'이라 적는 등 우스운 오타들도 많았다.

봉사하는 동안 교정이 제일 힘들었다. 처음엔 '교정? 그 까짓게 뭐가 힘들겠어~' 했는데, 막상 교정 할 때는...


이랬다. 정말, 27페이지도 그렇게 적은 페이지는 아닌데, 컴퓨터 안의 깨알 같은 글씨들 중 오타를 일일이 찾아 고쳐내야 한다니... ㅠㅠ

그리고, 오늘 엄마께서 점자도서관에 이메일로 우리 둘이 쓴 글들을 보내셨다. 피눈물을 흘리면서 교정을 하긴 했지만, 다시 그 글자들 중에서도 엉뚱한 영어가 되거나 이상한 단어가 된 것들도 몇개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발 그런 일은 없기를!


점자도서관 타이핑 봉사는 생각보다 정말 재미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누군가가 내가 타이핑한 글을 빌려서 읽는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기분이 묘하기도 하면서 신기하다.

봉사를 하는 동안 '하기 싫어 죽겠네'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막상 타이핑이 완전히 다 끝나고 나니까 '만세!' 라면서 내 마음속에서 환호성을 질러 댔다. 하..하... 마지막으로 느낀 점은, 이렇게 우리가 읽는 책들을 시각장애인들도 읽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도와 주지만, 그래도 아직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들도 불편한 점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타이핑한 대목 중에서는 김두한이 '여운형 선생' 할 때 '여 선생'을 처음엔 '여 선생(女先生)'으로 착각하는 대목이 있는데, 정말 이런 부분은 한자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도 헷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점자도서관에서 나눠준 자료집 주의사항을 보면 '단어(한자)'로 되어 있는 단어는 가로에 있는 한자를 지우고 그냥 단어만 쓰도록 되어 있다. 몇몇 시각장애인들은 그 부분을 읽다가 '왜 여 선생을 여 선생으로 헷갈려 하지?'라고 생각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점자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에서 한자도 변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면 조금 더 읽기가 편해질 수도 있을 거다.

점자도서관 같은 복지 시설에도 많은 지원이 되면 좋겠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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