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connected, too?" 상당히 자주 봤다. 영화 <아바타>에서 커다란 생명의 나무를 중심으로 온 부족 사람들이 연결된 낭만적인 장면이 떠오르는 말이다. 그리고 이 표현은 적절하다. 비건의 핵심은 거부가 아니라 연결에 있다. 비건이 되는 것은 산업과, 국가와, 영혼 없는 전문가들이 단절시킨 풍부한 관계성을, 어린아이였을 때 누구나 갖고 있던 직관적 연결고리를, 시민들이 스스로의 깨우침과 힘으로 회복하는 하나의 사회운동이다.



변화를 위해 몸을 던지는 활동가 유형도 있겠지만 이들은 극소수다. 어떤 문제를 자각했을 때 "최소한 나라도 저 문제에 기여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소 소심하게나마 변화를 믿는 사람들. 내가 매일 세 번 밥상에서, 식당에서, 마트에서 던지는 한 표 한 표가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아는, 그래서 최소한 내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공헌하는 습관만은 관두겠다고 결심한 사람들. 소중한 결심이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힘든 일은 아니다. 가령 최근에 진행된 '미투 운동'에 빗대어 생각해 보자.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직도 수많은 장애물들이 남아 있다. 뿌리 깊은 성차별을 나 혼자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문제의 규모에 압도당해 아찔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 한 명만이라도 성추행/성폭행을 하지 않는 건 상대적으로 매우 쉬운 일이다. 이것조차 못하겠다면 말이 안 된다. 



우연히 본 신문 기사에, 서점에서 스쳐 지나가며 본 책 제목에, 버스에서 들리는 라디오 방송 책 소개 프로그램에, 자꾸만 '페소아'라는 말이 반복해서 들린다.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찾는 건지, 진짜 우연인지도 분간이 안 간다. 계속 어른거린다는 사실만 분명해진다. 그저 호기심에 이 신호를 따라,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뿌려놓은 과자 부스러기를 줍듯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것들을 배우게 되고 내 인생에 정말 필요했던 지혜의 한 조각을 얻게 된다. 문득 이 모든 과정을 되돌아봤을 때 마치 누군가 나의 배움을 위해 짜준 커리큘럼이 존재한 것 같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렇다고 비건이 나의 모든 생활을 잠식하는 강령이 되도록 살 생각은 없다. 원칙과 도그마는 다르다. 원칙은 가치관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기준이고, 도그마는 개별 상황에 대한 검토와 수정을 불허하는 아집이다. 적절한 선은 뭘까? 정답은 없지만 내 생각엔 최소한 90퍼센트 이상은 실천하고 있어야 비건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고, 나머지 10퍼센트 이하도 애매하거나 불가피한 것들이어야지, 아무리 1년에 한 번이라도 의식적으로 육류를 사 먹으면서 비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요는 최선을 다하는 것. 나보다 철저하게 실천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나의 융통성을 미화하지 않되, 타협을 할 때는 억지로 합리화하거나 찜찜함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이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얼굴의 윤리학을 말한다. 그는 "얼굴은 하나의 명령"이라고 했다. 얼굴은 그 자체로, 언어를 초월해 우리에게 말을 건다. "나를 사랑하라, 나를 죽이지 마라, 형제여, 자매여…." 모든 얼굴은 그렇게 말을 한다. 사형대에서도 사형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눈을 가리고 처형을 한다. 우리는 얼굴 있는 것을 먹는 꺼림칙함을 본능적으로 안다.



이 다큐는 우리가 '남성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의미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누구 못지않게 남성적인 신체미를 뽐내지만, 전혀 마초적이거나 가부장적이지 않고 동물과 환경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배려해 비건을 택하는 멋진 남성 운동선수들을 보면 과거의 남성성이 얼마나 낡고 진부한 개념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육식은 전통이고 문화이므로 바꿀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인종차별, 계급제도, 노예제도, 성차별 모두 문화이고 전통이었다. 일부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전통과 문화는 고정되고 정체된 개념이 아니다. 지금의 전통이 당시에는 혁신이기도 했다. 나날이 변화하는 인간사에서 전통과 문화 역시 끊임없이 변화한다. 전통이나 문화라고 해서 마냥 변화를 거부할 순 없고, 그 자체로 정당화될 수도 없다. 가치관이나 윤리의 변화에 따라 변모된 전통과 문화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인류사 자체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전통과 문화의 역동적인 각축장이다.




몇 년 전에 '비수기의 전문가들'을 읽은 뒤로 관심을 갖게 된 작가의 책인데 그림도 좋지만 글도 참 논리적으로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다 읽고 나서 그동안 내가 채식주의를 얼마나 가볍게 여겼는지, 내가 먹는 한 끼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반성을 많이 했다.

여기까지는 진부한 감상이고... 중학생 때 수요집회에 갔던 것을 계기로 일제품 불매운동을 시작한 내가 겪은 경험들이 채식주의자로서 작가가 직면하는 상황들과 비슷한 것을 보면서 비건 또한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 있는 모든 일제 문구를 싹 갖다 버리고 우익 논란이 조금이라도 있는 기업은 소비하지 않겠다던 나만의 원칙도 큰 불편 없이 쉽게 지켜 나갔는데, 채식이라고 해서 실천에 어려움을 느낄 이유가 뭐가 있겠나 싶다. 내가 성차별, 인종차별을 타파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공장식 축산과 환경오염에 대해선 무관심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22년 평생을 육식주의자로만 살아왔던 내가 한순간에 비건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자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올해부터는 채식 중심으로 식단을 바꾸고 학교 내에서 진행되는 채식주의 관련 행사들도 더 관심을 갖고 찾아봐야겠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 이후로 두번째로 읽은 채식과 관련된 책인데, 전자에 비해 사람들이 채식주의에 대해 흔히 품는 의문점들을 모두 짚어서 명쾌하게 답해줘서 채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유도하게끔 잘 만든 책인 것 같다. (다만 포어의 책은 읽은 지가 오래되어서 가물가물하지만 공장식 축산의 실태를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에 채식주의 자체에 대한 비중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만간 이 책도 다시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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