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링을 했던 약 2주동안에 있었던 일들

일기/2011 - 20132011. 3. 11. 20:22



홈스쿨링을 결정하면서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전에 썼던 글에서도 말한 적이 있던, 아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었다.

교복 입고 중학교 가는 친한 친구들이나, 그냥 인사만 가끔 하는 정도의 관계인 아줌마들과 학교 갈 시간에 마주쳤다간 그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참 갑갑했다. 그래서, 나는 이사를 가게 되는게 너무나도 기뻤다. 전에 살던 집보다 훨씬 더 넓은 새 집이라서 좋은 것도 있었지만, 아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으니 편하게 아무렇게나 돌아다녀도 되기 때문이다.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집과 정말 가까웠던 잠실 교보와 이제는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

이사와서 짐을 어느정도 다 정리한 후, 광화문교보에 가서 중학교 교과서 몇 권-국어·사회·과학·한문만 샀는데, 모두 그냥 재밌는 책 읽듯이 읽어보려고 한다-과 중학교 문제집들, 그리고 검정고시 문제집들을 샀다.

검정고시는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졸업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시험이다. 그래서, 엄청 쉬울거라고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연필을 쥐었는데, 오랜만에 머리를 쓰니까 잘 안 되는 것도 있었고, 중학교 3년 과정을 단 5개월만에 공부해야 하니 만만치가 않았다. 국어, 사회, 영어, 도덕은 괜찮지만 수학이랑 과학은 조금 힘들다. 솔직히 말하자면, 검정고시 공부하기 직전에 가장 무서운 과목이 '수학'이다. 막상 문제를 풀면 가위표 천지가 그려지진 않지만, 음... 수학에서 많이 틀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불안해진다. (다행히 검정고시는 평균 60점만 되어도 합격이라고 하길래, 조금 마음이 놓이긴 한다. ^^) 또, 새로 산 문제집들을 풀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로 벌써 며칠째 검정고시만 준비하고 있는 중이니, 자꾸만 파란색, 흰색으로만 이루어진 표지의 검정고시 문제집에 비해 너무나도 알록달록하고 예쁜 중학교 1학년 1학기 문제집들에 눈이 가게 된다. 게다가 내 또래 친구들은 학교에서 1학년 과정을 배우고 있을 텐데, 나는 검정고시를 본 다음인 8,9월에야 1학기 진도를 빨리빨리 나가야 하니... 초조한 마음도 든다.

그리고, 친구들한테 연락이 안 오니까 외롭다!! 14년째 외동딸로 살아왔던 나는 여태까지 외롭다는 생각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혼자서 잘 놀지만, 친구들이 이젠 더 바빠져서 문자가 거의 5일에 한 번 꼴로 온다. 전에는 너무 답장 보내는게 귀찮아서 어떻게라도 친구들이 문자를 더 안 보내게 하려고 말을 끊었던 내가, 이젠 스팸 문자만 와도 반가워한다. 그리고 자꾸 열심히 수업 받고 있을 아침 11시나 오후 2시쯤에 친구들에게 잘 있냐고 문자를 보내려고 한다. 

다음에는, 홈스쿨링을 하는 동안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들을 적어보겠다.

먼저 가장 좋았던 점은, 친구들이 학교에 가는 시간에 나는 자유롭게 어디를 돌아다닐 수도 있다는 거다. 아침부터 동네 한 바퀴를 돌 수도 있고, 점심 시간에는 시간을 내서 서점 같은 곳도 갈 수 있다. 또, 학교에 다닐 때 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봉사 활동 같은 것들도 해 볼 수 있어서 좋다. 물론 초등학교에 다녔을 때도 시간이 많이 여유로웠지만, 이제는 학교에서 보낸 6시간도 다 자유시간이니까 보람 있는 일들도 자주 할 수 있다. 아직은 많이 한 일은 없지만, 다음 주 월요일에 점자도서관에 가서 입력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
또, 아무래도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서로 더 정이 많이 드는 것 같다. 전에도 엄마 아빠와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큰 충돌이 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특히 엄마랑은 교환일기로도 소통했지만, 이제는 24시간 내내 함께 있으니 얘기도 더 많이 하고, 더 자주 같이 나가고 하니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대표적인 예로, 전에는 절대 말도 못하고 나 혼자서만 숨겨 왔던 충격적인 내 몸무게에 대해서도 툭 터놓고 부모님께 다 하소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좀 아닌가?

하지만 나쁜 점은, 전혀 안 움직이게 된다. 평소에도 나는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주말에는 그게 더 심해서, 토요일, 일요일엔 친구들끼리 만나서 노는 것도 꺼려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사 온 이후로는 학교에 안 가니까 설렁설렁 아침밥을 엄청나게 먹어대고, 오레오 세 상자를 하루만에 먹어치우고,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이틀 전 위핏으로 체중을 재어 봤다가 기절초풍할 사건이 터졌다. 이사가기 전보다 엄청나게 찐 것이다. 결국 나는 그날 충격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엄마에게 모든 사실을 말했고, 그 사건 이후로 요즘은 계속 어떻게라도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이틀만에 조금씩 살이 빠지기 시작하고 있다. 휴...) 등교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는 나갈 일도 없으니, 점점 더 안 움직이게 되는게 가장 큰 단점이다.

그리고, 집에만 있다 보니 해야 할 일들은 점점 더 안 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부를 하고, 집에 와서도 학교 준비물을 사거나 숙제를 하는 등 해야 할 일들이 여러가지가 생기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없으니 아이팟을 두들겨 대면서 '어, 나 공부해야 하는데... 근데 감자도 캐야 하는데..(스머프빌리지!!) 아이고... 미치겠네~' 이렇게 되면서 엄마 눈치를 살살 보게 된다. 더군다나 아빠 하시는 일과 관련되어서, 우리 집엔 아빠께서 회사에서 가져오신 아이패드, 맥북에어, 갤럭시탭으로 넘쳐난다.(내가 이걸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면 애들은 숨이 넘어간다. ㅋㅋ) 거기에 내가 쓰는 아이팟 4세대까지 있으니... 홈스쿨링을 시작하기 전부터 결심한 '책 많이 읽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홈스쿨링을 하면서 무조건 좋은 점만 있을 줄 알았지만, 힘든 점들도 몇 가지 있다. 아직은 홈스쿨링을 제대로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으니, 차츰 나한테 맞는 생활 방식은 무엇인지 알아가면서 계획도 더 구체적으로 잘 짜고, 고쳐야 할 부분들은 고칠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가장 내가 고쳐야 할 점은 아이팟과 컴퓨터 광클질이 가장 큰 문제다. 이제 읽어야 할 책들도 많이 생겼으니, 많이 노력해봐야겠다. :D



  • BlogIcon GoodMom 2011.03.14 09:33 신고

    엄마가 느꼈던 점을 우리딸이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구나.
    2주동안 시간표도 이렇게 저렇게 바꿔나가보면서, 겨레 네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게 무얼까 생각해 보니,엄마가 너만 바라보는 것을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게 쉽지만은 않지만, 엄마도 열심히 노력할게.
    그리고 어제 저녁 아빠가 한 말대로, 훗날...우리가 집에서 함께 보내면서 함께 배우는 과정을 했던 이 시간을 그리워 할 수 있는 날들이 또 오겠지?
    오늘 자원봉사 교육 즐겁게 받고, '나누는 삶'의 진정한 가치도 배웠으면 좋겠다...
    우리 겨레 화이팅!!!

    • BlogIcon 세상 뛰어 넘기 장 상 2011.03.25 20:31 신고

      엄마랑 생각이 비슷할 줄은 전혀 몰랐네.. 어쨌든, 내가 스스로 나를 집에다 가둘지는 몰라도 엄마는 날 집에다 가둬 놓진 않겠지? 난 엄마를 믿어 ㅋㅋ

  • BlogIcon 먼물 2011.03.24 22:28 신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꿈꾸고 많이 행동하는 우리 딸 되길!!! ^^

  • BlogIcon RL 2011.06.16 23:39

    정말 잘읽었습니다.
    부럽네요 저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인데 학교생활,입시등이 너무 힘들어
    홈스쿨링 하는사람들은 어떨까 궁금해서 구글에 홈스쿨링을 쳤더니
    이블로그에 오게되었습니다.
    재미있게 사시네요 부모님과 가까운 모습도 부럽구요
    제가 홈스쿨링을 한다면 아마... 밖에 나가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공원도 자주가고 그랬을것 같은데 ㅎㅎ 여러 유명인사들 강연투어 다니구요 ㅎㅎㅎ그런 강연들 주로 평일날 학교끝나기 전에 하더라구요 제가 글쓴분보다 나이를 살짝 더먹어서 가끔 중학교 생활을 후회하기도 하는데.. 홈스쿨링 결정하기전에 고민도 많이하고 관련 책도 많이 읽어보셔겠지만 글쓴분에게 하고싶은말이 있는데.. 좀해도 될런지요? 좀 주제넘나요? ㅎㅎㅎ;;; 그냥 흘러가는 소리로 들으셔도 됩니다. 아무래도 친구들과도 이야기도 나눠보고 하니 요즘 드는 생각은 적성을 빨리 찾을수록 좋다는것입니다. 저는 중학교때 학교돌아오면 게임하기 바뻣는데 이제는 컴퓨터,iT관련 정보들이 너무 재밌어서 (아이패드,맥북에어 이런 가젯들 엄청 좋아해요 ㅎㅎ) 관련일 종사하는사람 트위터 팔로우도 하고 관련 기사도 읽고(근데 한국신문들은 읽지마세요 별도움안되는 찌라시 기사들만 많습니다. 저같은경우는 NYT,WSJ,Economist를 읽지요 영어를 배우는 단계라면 WSJ ASIA판 추천합니다. 똑같은 기사를 한글과 영어 두버전으로 볼수있지요) 다큐도 보고 알아가는게 너무 재밌더라구요 가끔 관련 대학강의도 들어보구요 그래서 게임할 시간이 없어졌고 갑자기 게임이 하고싶지가 않더라구요 저도 게임재밌는거 정말 잘아는데 게임할시간이 너무 아까워지고 오히려 구글,애플 이런회사에 다니는 사람 이야기 하나라도 더 듣고싶고(무척 재밌음 ㅎㅎ) 이야기에서만 끝나는게 아니라 다큐같은걸로 동영상으로도 보면 더 재밌죠 ㅎㅎ 문화차이도 너무 재밌더라구요 미국인이나 유럽인이 하는생각들...많이 다르더군요 그런 롤모델들의 말과 행동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구요 적성을 빨리찾으면 게임하는것같이 하는게 재미있으면서도 자기계발도 하면서 성취감을 얻을수있어 일석 이조 더군요 혹시 대학을 가고싶다 해도 적성분야에 관련된 대외활동으로 대학가기 편할수가있구요(수시,입학사정관제도) 생물을 좋아한다고 하면 생물공부를해 생물올림피아드를 나간다거나 토론같은걸 좋아하면 토론대회에 나가거나... 결국에는 자기 하고싶은 공부를 하는것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홈스쿨링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지요 남들 중학교에서 하는공부 똑같이 하면 오히려 그냥 학교 다니는것과 별반 다를바 없지 않나 싶네요 대학공부도 홈스쿨링할수도 있구요 요즘 미국 최고의 대학들이 강의들을 무료로 인터넷에 올려놓기 때문에 수월하게 공부할수 있지요 MIT OPENCOURSEWARE(http://ocw.mit.edu/index.htm)나 UC버클리(http://webcast.berkeley.edu/) 하버드대학도 간간히 있는것들이 있더라구요 저같은경우는 컴퓨터 사이언스에 관심이 많아 CS50 (www.cs50.net/)를 몇강 들어봤구요 아쉽게도 한국대학들은 등록금문제 해결하기도 바쁘신지 몰라도 이런 오픈코스웨어를 만든대학은 없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저는 이런부분에서 굉장히 후회하는것이 중학교떄나 고등학교때
    남들이 하는공부 생각없이 따라하고 점수가 안나와 좌절하고
    그랬던것이 아쉬워요 내가 좋아하는 공부(Computer science)를 했더라면 점수가 잘나오건 안나오건 그냥 그거 하는거 자체가 재밌어서 지금같이 심한 좌절감,열등감 느끼지 않았을텐데... 싶네요
    좀 횡성수설했네요;;; 좀 글이 매끄럽지 못하지만 여하튼 저는 글쓴분이 홈스쿨링을 하고계셔서 우리나라 입시생과는 다르게 행복하게 공부하셨으면 하는바램에 적어보았습니다. 별로 재미없고 행복하지도 않은 공부를 하고계시다면 빨려 때려치세요 남들이 시켜서 하는 공부,남이 하니까 괜히 따라하는공부 하기엔 인생 너무 짧지 않을까요? ㅎㅎ
    홈스쿨링으로 많은것 얻으시기 바랍니다.

  • 두리짱 2011.09.07 09:16

    홈스쿨링하고 있어서 더 반갑네요
    "행복한 홈스쿨링" 다음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운영자에요
    우리 카페에도 한번 놀러오세요

    우리 카페회원들에게도 여기 들러보라고 해야겠어요.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