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내가 네 살이었을 때 보면, 항상 초등학생들은 교복을 안 입으니 나랑 같은 아기처럼 보였는데, 중고등학생 언니들은 교복을 입으니까 확 달라 보였다. 그래서 늘 중학교에 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다가 여덟 살이 되어서 초등학교 취학통지서를 받고는 이제 6년 후면 중학교에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설레어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까지 내가 중학교에 가고 싶어 했던 걸 보면 어렸을 때 교복 입는 걸 간절히 원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이름 있는 중고등학교 교복 아니면 별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데. ㅋㅋ

그런데, 5학년이 끝나갈 무렵 엄마,아빠께서 이우학교에 보낼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처음에는 일반 학교와 대안학교의 차이가 뭔지 전혀 몰랐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교복을 아예 입지 않는 학교였다. (한 군데만 그런게 아니라, 모든 대안학교가 그랬다.) 지난 3월엔 이우학교에 가 보기도 했는데, 학교가 전체적으로 예쁘고 일반 학교와 수업도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워서 더 관심이 갔다. 그리고, 이우학교 시험을 보고, 합격하거나 혹은 떨어지는 것으로 모든 일이 평화롭게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우학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던 날, 엄마, 아빠께선 더욱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대안학교가 우리 가족에게 이런저런 점들이 맞지 않아서, 그냥 홈스쿨링을 하기로 결심하셨다는 것이다. 다른 애들이라면 소리를 질러 대고 울고불고 난리를 칠 일이었다. 나도 처음엔 조금 울먹울먹하긴 했다. 불과 몇 개월 전엔 학원을 다 끊고-그래봐야 영어학원 하나였지만-스스로 공부하기로 결정이 나더니, 이제는 학교까지 못 다니게 될 처지니 막막했다. 그러다가 퍼뜩 떠오르는게 있었는데, 좀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었지만, 학교 가기 싫을 때마다 '홈스쿨링 하면 얼마나 좋을까? 급식도 맛있는 것만 먹고, 게임도 실컷 하고, 책도 실컷 읽고...' 이런 생각을 자주 했던 게 떠올랐던 거다.(..지금 생각해도 너무 유치한 생각이다. ^^;) 그리고, 아빠의 의견을 들어보니 다른 친구들이 학교에서 교과서만 쳐다보는 동안 나는 공부도 하는 동시에 책도 많이 볼 수 있고, 운동도 열심히 할 수 있고, 다른 애들은 시간이 없어서 못 하는 경험도 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찬성 쪽으로 갔다.

처음에는 나만 초졸이 된다는게 정말 창피했다. 다섯 달 전만 해도 이사 계획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아파트 안에서 나는 아침 7시 반에 설렁설렁 운동하러 가는데 내 친구는 교복 입고 학교가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쩌나 하고 정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여름방학 내내 '다시 중학교 가고 싶다고 말할까, 말까?'엄청 고민하기도 했다. 우리 가족을 제외한 다른 친척들에는 모든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점도 싫었다. 

그러다가 겨울이 되면서, 처음 홈스쿨링을 하기로 했을 때 아빠께서 하신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그 말을 들었던 날만 해도 재판받는 기분이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나 혼자만 중학교에 안 간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상하면서도 특별하게 보일 것 같았고, 그냥.. 그냥 모든게 너~무 좋을 것 같았다. 그날따라 그냥 내가 긍정적이었던 건가? :-)

결국 단짝 두 명에게 중학교에 가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밝히기로 했다. 나한테는 정말 소중한 친구들인데, 말해줘도 괜찮겠지 싶었다. 그래서, 전에 다니던 학교 단짝에게 먼저 당당하게 "나 홈스쿨링 할거야!"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표정이 밝았던 친구 얼굴이, 점점 충격의 도가니에 빠진 듯한 표정이 되면서 "너 그러면 공부는 어떻게 할건데?!"라고 물었다. 친구 입장으론 그 사실이 당연히 놀라웠을 테고 어떻게 공부할 건가 싶어서 걱정되었겠지만, 그냥 왠지 무시당한 기분이라 마음만 상했다. 

며칠 후, 그 다음 친구라도 이해해 주겠지 하고는 말을 했는데... 이 친구는 전에 충격 받은 친구보다 더 반응이 싸늘했다. "나 중학교 안 가."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 너 그러다가 공부 힘들어지면 어쩌려고 그래..."라고 하는 거다. 얘한테는 괜히 말했다 싶어서, "에이, 뻥이야! 내가 뭐하러 학교를 안 가겠냐? 농담이야~"라고 하면서 넘겼다. 정말, 자칭 대범한 성격이라고 하면서도 소심한 나다. ㅠㅠ (그 이후로 그 친구는 계속 내가 깜빡하고는 중학교에 안 가는 것처럼 얘기할 때마다 "중학교 가는 건 맞지?"라고 확인해 본다.) 아무래도 그 친구한테 중학교에 안 간다는 이야기는 졸업한 후에 연락하는 대로 얘기해야겠다.

그러다가 오늘, 드디어 중학교 입학 배정 통지서를 받았다. 대부분이(그리고 나도) 우리 집 가까이에 있는 남녀공학 중학교로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여자애들이 여자중학교에 가게 되었다. 전교에서 남녀공학으로 간 여자애들이 20명이 채 안 된다고 한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여중에 가고 싶어했기 때문에 홈스쿨링을 할 거라 어차피 여중 앞에는 가 보지도 못할 거란 게 조금 아쉽다. 여중이라서 교복도 정말 예쁘던데!! ㅋㅋ

이제 9일밖에 남지 않은 졸업식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나도 홈스쿨링을 하게 된다. 올해 여름에 볼 검정고시도 잘 보고, 3년 동안 홈스쿨링도 잘 되어 가길 희망한다. 물론, 내 의지에 따라 학교에 안 가고 스스로 공부하는 효과가 얼마나 좋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14년 동안 궁지에 몰렸을 때 행운이 따라주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좋은 일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또, 이미 학교의 도움 없이 혼자서 모든 일을 헤쳐 나갈 것이라는 것부터가 세상에 대한 틀을 벗어던질 준비가 서서히 되어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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