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래니와 주이 (Franny and Zooey) / J.D.샐린저

2018. 12. 1. 15:48



"잘됐다." 그녀가 기쁨을 실어 말했다. 때로 남성이라는 종족의 보편적 미숙함을 보이는 남자에게 짜증을 숨기는 일이란 지옥이었다. 특히 레인에게. 뉴욕의 어느 비오던 날이 떠올랐다. 극장에서 나온 직후 레인은 찻길 옆에서 수상쩍게 과한 호의를 베풀더니 턱시도 재킷을 입은 그 못돼먹은 남자가 레인이 잡은 택시를 타고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녀가 특별히 그 일을 언짢아했던 건 아니지만-맙소사, 남자답게 행동하면서 빗속에서 택시를 잡아야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일 것이다-레인이 다시 인도의 연석 위로 올라서면서 그녀를 바라보던 그 못돼먹고 적대적인 표정을 기억하고 있었다. 



"윌리뿐이 아니야. 그가 여자였어도, 예를 들어 우리 기숙사에 있는 누구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그는 여름 내내 무슨 레퍼토리 극단에서 무대 배경을 그리고 있었겠지.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웨일스를 돌았거나. 아니면 뉴욕에 아파트르 구해 잡지사나 광고사에서 일을 했을 거고. 죄다 그렇다는 거야, 내 말은. 모두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뭐랄까, 잘못됐다는 게 아니야. 천박하다는 말도 아니고, 반드시 어리석다는 말도 아니야. 하지만 그저 너무나 보잘것없고 무의미하고 그리고...... 슬프게 해. 그리고 최악은, 만일 보헤미안이 되거나 뭔가 그런 미친 짓을 한다면, 그것 역시 결국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시류에 순응하는 거라는 거야, 방식만 다를 뿐."




고급 글쓰기 24-A 수업 때문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서른여덟 편의 단편을 짊어지고 집으로 와 주말을 보내는 중이다. 그중 서른일곱 편은 펜실베이니아에 은둔하며 '글을 쓰고 싶어하는' 수줍은 네덜란드 레즈비언 이야기일 것이며, 호색한 일꾼의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될 것이다. 사투리로.




사실, 네가 듣고 싶을지 모르겠는데, 네가 어렸을 때 만일 시모어와 내가 추천 도서로 우파니샤드, 금강경,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또 우리가 좋아했던 그 모든 것을 네게 던져주지 않았더라면, 네가 훨씬 더 자리를 잘 잡은 배우가 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그 교수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종교 세미나 수업을 듣고 있는데, 나는 그가 옥스포드식 매력을 흩뿌리고 다닐 때 도저히 미소를 지어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 옥스퍼드에서 온 초빙교수라나 뭐라나, 허연 머리를 거칠게 산발한 지독하게 재미없고 자기만족에 빠진 사기꾼 늙은이야. 나는 그가 수업에 들어오기 전 화장실에 가서 일부러 머리를 헝클어뜨린다고 생각해.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그는 자기 과목에 대해 열정이 전혀 없어. 에고, 그건 있지. 열정, 그런 건 없어. 그래도 그건 뭐 괜찮아. 뭐 특별히 이상한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계속해서 자기가 무슨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고, 자기 같은 사람이 이 나라에 있으니 행복한 줄 알라는 멍청한 암시를 자꾸 주잖아." 




"내 머릿속에 대학이란 곳은 지구와 이 세상에 보물을 쌓는 일에 헌신하는 또하나의 멍청하고 정신 나간 장소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는 거야. 보물은 그냥 보물이야. 맙소사, 보물이 돈이거나 물건이거나 심지어는 문화이거나, 아니면 그냥 평범한 지식이라 한들 무슨 차이가 있어? 그 모든 것이 다 내게는 포장지를 벗기면 정확히 같은 것처럼 생각됐고, 아직도 그래! 때때로 나는 지식이-게다가 지식을 위한 지식일 때-그중 최악이라고 생각해. 그게 제일 용서할 수 없지, 확실히."




"단순한 논리로 따지자면 내가 보기에 물질적인 보물 아니면 지적인 보물을 탐내는 사람과 영적인 보물을 탐내는 사람 사이엔 전혀 아무런 차이가 없어. 네 말처럼 보물이 보물이지 뭐, 젠장. 그리고 내 생각엔 역사상 모든 염세적 성자의 90퍼센트는 나머지 우리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소유욕이 많고 매력이 없었어."




"이 집안 식구들은 죄다 각자의 빌어먹을 종교를 제각각 포장해서 가지고 있어. (중략) 월트가 언젠가 웨이커에게 이 집안 식구들은 모두 전생에 수많은 나쁜 업보를 지독하게 쌓은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 적이 있어. 월트의 이론으로는, 종교적인 삶이란, 그리고 그 삶에 따르기 마련인 온갖 고뇌란, 신에게 이 추한 세상을 창조했다고 비난하는 뻔뻔한 인간들에게 역겨워진 신이 게워낸 토사물이라는 거야."



"내 방에서 망할 하키 스틱에 미끄럼방지 테이프를 감고 있는데, 네가 문을 쾅 열고 들어왔지, 성경을 펼쳐들고 아주 요란하게. 너는 더이상 예수를 좋아할 수가 없다고 말했어. 군대에 있는 시모어에게 전화해서 그런 얘기를 해도 될지 알고 싶어했어. 네가 왜 예수를 더이상 좋아할 수 없다고 했는지 기억해? 내가 얘기해주지. 왜냐하면 첫째, 너는 그가 유대고 회당에 들어가 책상과 우상들을 죄다 사방에 집어던진 것을 인정할 수 없었어. 아주 무례하고 아주 불필요한 행동이라고. 넌 솔로몬이나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라 확신했지. 그리고 네가 인정할 수 없었던 또다른 것은 네가 펼쳐든 성경의 이 구절이었어.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그건 괜찮았어. 그건 아름다웠지. 그건 너도 인정했다고. 하지만 예수가 바로 이어서 한 말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아, 바로 그 구절에서 어린 프래니 마음이 떠난 거지. 바로 거기서 어린 프래니가 성경을 냉정하게 딱 끊고서 곧장 부처에게로, 하늘을 나는 착한 새들을 전혀 차별하지 않는 부처에게로 간 거야."




신을 이야기할 때, 신격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 존재는 하지만 발분하지도 관여하지도 않으며, 무엇에 대해서도 사전 숙고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세번째 부류는 신격이 존재하고 사전 숙고도 하지만 위대한 것, 천국에 관한 문제에만 그러하며 지상의 일에는 그러하지 못한다고 본다. 네번째 사람들은 천국의 일들과 마찬가지로 지상의 일들에도 그러하지만 일반적일 뿐 각 개인의 일들에 대해서는 그러하지 못한다고 본다. 다섯번째 사람들은, 그들 중엔 오디세우스와 소크라테스도 있는데, 이렇게 외친다. "내 움직임에 대해 당신이 모르는 것은 없습니다!"

 - 에픽테토스




서암이 매일 자신을 불렀다. "주인아."

그러고 자신이 대답하였다. "네."

그러고 그가 덧붙였다. "늘 냉철하거라."

다시 그가 대답했다. "네."

"그러고 나서는 다른 이들에게 속지 마라." 그가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 무문관




"내 기억에 너는 심지어 모든 좌석안내원들이 천재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지. 도대체 뭐가 문제냐, 친구? 네 뇌는 어디에 있는 거냐? 괴물로 키워지는 별난 교육을 받았다면, 적어도 그걸 사용해야지, 써먹어야지. 지금부터 최후의 심판일까지 계속 예수기도문을 외울 순 있겠지만, 종교적인 삶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 거리 두기라는 걸 깨닫지 못하면, 네가 평생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있을까? 거리 두기, 친구, 오직 거리 두기. 욕망에서 자유롭기. '모든 갈망을 멈추기'.




"한 가지 더. 이게 끝이야. 약속할게. 하지만 중요한 건, 네가 집에 와서 관객의 어리석음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불평을 했다는 거지. 다섯번째 줄에서 들려왔던 그 빌어먹을 '엉뚱한 웃음소리'. 그래, 그건 맞아. 맞다고, 그건 우울하지. 우울하지 않다는 게 아냐. 하지만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정말로.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프래니. 예술가의 유일한 관심은 어떤 완벽함을 달성하는 것이고,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의 완벽함이야. 너는 다른 것들에 대해선 생각할 권리가 없어. 어떠한 의미에서든.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1)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으로 내 인생 최악의 시절로 나를 끌고들어갈 지옥문이 활짝 열리기 시작할 무렵인데, 다 읽고 나서 결말이 뭔가 실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유모를 위로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올해도 한창 혼란할 시기에 이 책이 생각나서 다시 읽어봤고, 또 똑같은 생각을 했다. 다만 호밀밭의 파수꾼 이후 샐린저의 또다른 소설을 읽는다는 데에만 의미를 두었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내가 프래니와 동갑이 되어서 그녀의 생각에 공감을 하기도 하고, 샐린저의 'Nine Stories'에 등장하는 시모어의 이야기까지 읽은 뒤였기 때문에 프래니와 주이에선 등장하지 않는 시모어가 작중 인물들에게 어떤 존재였을지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열 살 때 호밀밭의 파수꾼을 깔깔거리면서 읽다가 재수를 앞두고는 울면서 읽었고, 영화 중에서도 어릴 적엔 그저 그렇게 봤다가 좀 더 나이 들어서 다시 봤을 때는 감동받았던 것들이 제법 많았던 것을 보면 책과 영화는 여러 차례 거듭해서 볼수록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고 더 많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2)

올해 이 책과 폴 진델의 '피그맨',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를 다시 읽어보니까 이 책들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내 청소년기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 내 말투나 사고방식, 행동이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서 나타나는 걸 보고 '헐 이거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니었어?' 라는 생각이 들 정도. 프래니와 주이를 예로 들자면 프래니의 우울과 주이의 시니컬함, 버디의 문체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에게 모두 녹아들어서 지금까지도 나의 일부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이가 언급한 사홍서원은 수험생 시절 내내 걱정이 일 때마다 마음속으로 외는 기도문 역할도 해주었으니... 어찌보면 내 최애인 호밀밭의 파수꾼보다도 프래니와 주이가 내 삶에 훨씬 더 많이 녹아들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3)

책에서 프래니가 빠져 있던 '순례자의 길'이라는 책이 가상의 소설인 줄 알았는데 위키피디아를 보니 정말로 존재하는 책이었다! 한국어 번역서도 나와 있던데 엄마 대학생 시절에나 나왔을 법한, 엉망진창인 번역과 손대기도 싫은 디자인으로 범벅이 된 책들만이 가진 구린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기에 내용이 너무 난해하지만 않다면 조만간 원서로 구해서 읽어보고 싶다. 며칠 뒤면 킨들도 오는데 기왕이면 킨들에서도 구할 수 있는 책이면 좋겠다.


4)

아무튼 이 책을 영업해 보자면 샐린저 팬들은 무조건 좋아할 책이고, 샐린저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샐린저의 다른 작품들보단 좋아할 책이다. 당장에 Goodreads만 봐도 호밀밭의 파수꾼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지만 프래니와 주이는 호평이 더 많은 편이고, 근데 샐린저 까들은 콜필드 뺨치는 성격 파탄자인 주이가 소설의 진입장벽 역할을 할 것이다... (사실 프래니가 거의 결말에 가기 직전까지도 인생을 한탄하면서 울부짖는 역할만 하기 때문에 이미 시작에서부터 틀려먹을 가능성도 있을 것같음) 이렇게 적고보니까 호밀밭의 파수꾼이랑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진짜로, 내가 보기엔 프래니와 주이가 좀 더 유들유들한 성격의 책이다. 이건 책을 직접 읽어 봐야만 이해할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