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적 견해에 도전하면서 공개적으로 발설된 대담한 생각의 힘은 쉽사리 측정할 수 없다. 적들의 자기 확신만이 아니라 친구들의 자기만족까지도 뒤흔들 정도로 용기를 내어 말하는 특별한 사람들은 변화를 위한 소중한 촉매이다.


1963년 워싱턴 대행진에서 SNCC 의장 존 루이스는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들은 바로 그 어마어마한 청중들을 상대로 연설하면서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려 했다. "연방 정부는 누구의 편입니까?" 행진 주최 측은 케네디 행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이 구절을 그의 연설문에서 빼 버렸지만, 루이스와 그의 SNCC 동료 활동가들은 남부에서 자행되는 폭력 앞에서 이상할 정도로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 연방 정부를 수도 없이 경험했다 - 바로 이 정부가 나라 바깥에서는 그토록 자주, 흔히 압도적인 무력을 동원하면서까지 기꺼이 개입해 왔음을 보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언론인과 학자들은 조지아 주 올버니가 운동 진영에게는 패배였다고 흔히 말해 왔다. 인종 분리에 대해 직접적인 승리는 하나도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피상적인 판단으로 저항 운동을 평가하는 데 있어 종종 범하는 실수이다. 사회운동은 많은 '패배' - 단기적으로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 - 을 당할지도 모르지만, 투쟁의 과정에서 낡은 질서의 힘은 부식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생각은 변화하게 된다.


민권운동은 역사적 성과를 이루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종 분리 표지판이나 배지보다 훨씬 더 만만찮은 장벽과 맞닥뜨렸다. 우선, 경제체제는 일부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보상을 주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체제에 충성을 바칠 만큼 충분한 보수를 주면서도 상당수 국민들에게는 세대를 이어 비참함만을 물려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비백인들은 숙명적으로 영속적인 빈민층의 대다수를 형성한다는, 역사적으로 인종차별주의에 젖어 있는 국민적인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


민권운동은 최소한 사태를 흔들기 시작했다. 특히 국민들의 삶의 한 측면 - 문화 - 이 흔들리고 있다. 음악, 영화, 스포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인종적 적개심에 둘러싸여 있는 와중에도 선구적으로 여러 인종을 한데 묶어 세웠다. 이러한 문화적 변화는, 도심 빈민가를 뒤덮은 분노와 불편한 관계에 있긴 하지만, 정치·경제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무지개동맹'을 향한 길을 닦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한 일이 언제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벌어질지 또한 알 수 없다. 그러나 극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면 사태가 바뀌었음을, 물론 충분히는 아니지만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여 줄 만큼은 충분히 바뀌었음을 잊는 셈이다. 과거의 역사에서 우리는 스스로 놀란 적이 많다. 다시 놀랄 수 있는 것이다. 실로, 우리가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

우리가 폭격한 고도 - 2만 5천 내지 3만 피트 - 에서는 사람의 모습도 볼 수 없었고 비명도 들을 수 없었으며, 피도 보지 못했고 사지가 찢겨 나간 광경도 보이지 않았다. 기억나는 거라곤 지상에 떨어지는 소이탄이 하나하나씩 마치 성냥처럼 불타오르던 장면뿐이다. 나는 그저 높은 하늘 위에서 '내 일을 하고 있었다' - 잔학 행위를 저지르는 용사들의 역사를 시종일관 장식하는 설명이다.


나는 다른 승무조의 사수와 친해졌다. 우리는 항공기지라는 문학의 불모지에서 무언가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 둘은 다 책을 좋아했고 또 둘 다 정치에 관심이 있었다. 언젠가는 그가 이런 말을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너도 알겠지만, 이건 파시즘에 대항하는 전쟁이 아냐. 제국을 위한 전쟁이지. 영국, 미국, 소련 - 다 썩어 빠진 나라들이고 히틀러주의를 도덕적으로 우려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들 맘대로 세계를 운영하기만을 바라잖아. 이건 제국주의 전쟁이야."

"그럼 넌 여기 왜 있는 거지?" 나는 물었다.

"너 같은 녀석들에게 말해 주려고."


현대의 어떤 전쟁도 이처럼 만장일치로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파시스트라는 적은 완전한 악이어서 어떠한 의문도 가로막았다. 그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나쁜 편'이었고 우리는 '좋은 편'이었으며, 일단 그런 결정이 내려지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전쟁 경험을 다시 생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를 읽어 가면서, 나는 어떻게 전쟁이라는 환경이 한쪽을 다른 쪽과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지에 관해 알게 되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정당한 전쟁'에 대한 과거의 나의 믿음은 산산이 흩어졌다. 세계에는 자유와 인권을 가로막는 사악한 적들이 분명 있긴 하지만, 전쟁 자체가 가장 사악한 적이라고 나는 결론 내리고 있었다. 또 어떤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더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인도적이라고 마땅히 주장할 순 있지만, 그 차이가 현대적인 대규모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육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히 크지는 않다는 것도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어떻게 인간의 독창성, 상상력, 용기, 희생, 인내심에서 전쟁의 대체물을 찾을 것인가?

그렇다. 인내심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우화가 떠오른다. 홀로 사는 한 남자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 본다. 강력하고 무장한 폭군이 문 앞에 버티고 선 채 묻는다. "복종할 테냐?"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옆으로 비켜선다. 폭군이 들어와 집을 차지한다. 남자는 몇 년이고 그의 시중을 든다. 폭군은 독극물이 든 음식 때문에 수수께끼처럼 병에 걸린다. 그는 죽는다. 남자는 문을 열더니 시체를 치우고 집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는 단호하게 말한다. "안 하겠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대륙을 가로질러 행진한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배웠다 - 그것은 언제나 '서부 확장'이라 불렸다. 확장 - 그것은 거의 생물학적인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저 자라나는 것일 뿐이었다. 이를 보여주는 지도는 밝고 다채로운 색이었다. 플로리다 취득은 초록색, 루이지애나 취득은 파란색, 멕시코 양도는 빨간색. 모두 취득과 양도였다! 친절하기도 하여라.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도움이 된다. 미국혁명 전후로 이 나라를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이 곳에 살아온 원주민들을 쫓아내거나 절멸시켜야 했다. 우리는 기만과 무력을 사용해서 확장했고, 플로리다를 군사적으로 침략함으로써 그 땅을 우리에게 '팔도록' 스페인을 설득했으며 (돈은 하나도 오가지 않았다) 멕시코를 침략해서 그 절반에 가까운 딱을 접수했다.


아버지는 평생 동안 쥐꼬리만 한 보수를 받으며 열심히 일했다. 나는 미국에서는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부자가 된다고 말하는 정치가들과 언론의 논평가들, 기업 중역들의 잘난 체하는 말을 들을 때면 언제나 분개했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만약 가난하다면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보다도, 은행가나 정치가보다도, 열악한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다면 실제로 더욱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한 내 아버지와 셀 수조차 없이 많은 다른 사람들, 남자와 여자들을 보면 이 말이 거짓임을 알 수 있었다.


내 인생의 첫 33년 동안 나를 둘러싼 세계는 이런 모습이었다 - 실업과 열악한 일자리의 세계, 대부분의 시간을 비좁고 지저분한 곳에서 살면서 두 살, 세 살짜리를 다른 사람들의 손에 맡기고 학교나 직장에 나가야 했고, 아이들이 아파도 돈이 넉넉하지 않아서 개인 의사에게 데려가지 못하고 시간을 끌다 결국은 종합병원 인턴들의 손에 맡겨야만 했던 나와 아내의 세계.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이 나라에서조차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적절한 학위를 갖추고 그 세계를 빠져나와 대학교수가 된 후에도, 나는 결코 그 세계를 잊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계급의식을 버리지 않았다.


인종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자신들의 당연한 자리를 요구하는 대담한 여성들의 존재 속에서, 동성애자들이 진귀한 골동품이 아니라 오감을 지닌 인간 존재라는 대중들의 각성 속에서, 걸프전 와중에 잠시 고조된 군사적 광기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확대된 군사개입에 대한 회의론 속에서, 단지 수십 년에 불과한 시간 동안 이루어진 놀라운 의식의 변화에 관해 생각해 보라.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으려면, 바로 이러한 장기적인 변화를 반드시 응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관주의는 자기 충족적인 예언이 된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 의지를 무력하게 만듦으로써 자기 자신을 재생산한다.


좋지 않은 시대에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어리석은 낭만주의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잔혹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공감, 희생, 용기, 우애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이 복잡한 역사에서 우리가 강조하는 쪽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만약 최악의 것들만을 본다면, 그것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파괴할 것이다. 사람들이 훌륭하게 행동한 시대와 장소들 - 이러한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 을 기억한다면, 행동할 수 있는 에너지, 그리고 적어도 이 팽이 같은 세계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재생산한다.




작년 2월에 읽은 책인데 1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정리를 한다.

읽으면서 아니 미국인 중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파격적인 발언이 많았다. 스쳐지나가듯 언급되었던 일본이나 시오니즘에 대한 짧은 언급에선 ...예? 싶었으나 선진국 백인이 이런 역사관, 정치관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놀라웠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제3세계에 지나칠 정도로 간섭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자국 청년들에게도 너무 많은 상처를 남겼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일개 회고록으로 기억하지 않고 무척 좋은 책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변화에 대한 그의 긍정적인 믿음이 담겼던 결론부가 특히나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한창 힘들던 시기에 힘을 주고 한동안 내가 사회학과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만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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