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는 길에 신문기사에 온통 불수능이라고 뜬 걸 봐도 내 수능 얘기 같지가 않고... 오히려 번팅, 번번팅 언니들 수능 때가 더 떨렸던 것 같다.

뭐 그렇게 수능은 평가원 때보다도 더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 버렸다. (근데 불수능은 불수능이었다...ㅠ..)

시험 보러 가던 중 문득 이렇게까지 가볍게 시험을 보게 될 줄 알았더라면, 지난 3년간 나는 대체 왜 시험 때마다 장염을 일으키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일까, 조금 분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 때 그만큼 떨었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날에는 떨지 않고 시험을 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내 입시 계획은 초기와는 정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지금까지는 그 결과도 순조롭게 잘 나오고 있으니까 올 연말은 분명 맘 편히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



성경에 낙서하는 친구가 고쟁이에다가 낙서해놓음..

홈스쿨링 할 때 수학 싫다고 공부를 아예 안 하다가 고1때 진짜 개고생했는데.. 고쟁이 엄청 열심히 풀어서 9평에서 점수가 엄청 올랐다. (그러나 수능에서 나는 뒷목을 부여잡고...)






이건 수완 세지에다가 성경에 낙서하는 친구가 또 낙서해놓은 거. 맨날 나 자리비우면 내책에다가 낙서한다.







작년 8월에 새 동네로 이사오고 나서 온 가족이 심란하던 때... 방학 보충 끝나고 잠깐 아빠랑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 갔을 때 아빠가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까맣게 잊었을 무렵에 편지가 교무실에서 반장 손을 거쳐 내게로 왔었다.

그 당시에 편지를 쓰는 아빠를 보면서 '대체 3학년이 될 나에게 뭘 써줬을까... 내년에 나 막 받아보고 우는거 아냐?'하고 기대했는데... 내용은... 생각보다 많이 단순해서 조금실망했다...ㅋㅋㅋㅋㅋ







신승범 30번을 이상하고 힘든 방식으로 풀어서 맞췄다.






사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두바이 국왕의 육촌이다. 그래서 이번에 수능 잘 보라고 할아버지께서 황금코끼리를 사주셨다. 

마트료시카랑 같이 쭉 세워두면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 얘 덕분에 일이 잘 풀리는 느낌이다.



#2.


사실 수능 100일 앞두고 오방색 팔찌를 만들어서 항상 차고 다녔다. 

근데... 요즘 시국을 보면.... 난 그저 대입을 앞두고 평소보다 미신에 많이 의존하기 시작한 거였는데..... 음.....


#3.

수능을 일주일 정도 앞둔 상황에서는 수능이 끝나면 천지가 개벽하고 매일매일 문화생활을 즐기고 멋도 내는 인간이 되어 있을 것 같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지금 상황은 '쇼생크 탈출'에서 가석방한 죄수들처럼 새로운 생활에 적응도 안 되고 할 것도 없어서 지루하다. 옷을 사려고 옷가게에 가 보면 뭘 입어야 할지 감도 안 온다. (내가 3년 동안 가장 멋을 낼 수 있었던 옷은 학교 교복뿐이었다!) 쇼핑을 하려고 해도 돈을 쓰는 게 너무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사겠다. 몸도 너무 피곤해서 11시가 되기도 전에 잠자리에 들고, 입맛도 잃어서 살이 빠진다. 안구건조증까지 와서 눈이 퉁퉁 붓는 바람에 한창 공부할 때보다 더 못생겨졌다. 

세상 모든 가게들이 수험생 할인을 해 줄 것 같지만 그딴거 없다. 공차는 4일만에 할인이 끝나버려서 싼 값에 사먹어 보지도 못했고, 지금까지 내가 할인 혜택을 받은 건 아쿠아리움 뿐이었다. 

수능 끝나고 난 뒤 좋은 점이 세 가지 있다면...

  1. 홈스쿨링 하던 시절의 생활로 돌아갔다. 이건 나머지 두 가지 장점들을 포괄한다.
  2. 1일 1영화가 가능해졌다.
  3. 아무때나 퍼질러 잘 수 있다.

사족으로, 내가 수능이 끝난 뒤 본 영화들을 나열해 보자면
  1. 스위스 아미 맨
  2. 커피와 담배
  3.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4. 라우더 댄 밤즈 
  5. 나와 친구 그리고 죽어가는 소녀
였다. 이 중 1, 2, 5번이 내 인생영화 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4.

고등학교와 나는 암묵적인 계약 관계에 있었던 듯하다. 학교는 내게 수업을 제공해준다는 조건으로 3년동안 나를 마음껏 귀찮게 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고, 나는 얼마든지 그 귀찮은 일들을 꾸역꾸역 해 준다는 조건으로 '외고생'이라는 타이틀을 걸 권리를 얻은 것이다. 교복을 받아들던 날만 해도 넘쳐흐르던 애정은 수능이 끝나고 나니까 완전히 사그라들었고 이제는 졸업식 날 학교 건물을 마지막으로 돌아봐도 눈물 한 방울 날 것 같지가 않다.


#5.


2017학년도 수능 이후 코엑스 아쿠아리움을 찾아온 고3은 나와 내 친구가 유일했을 것이다.

아쿠아리움은 내가 기억하던 것에 비해 무척 작았고 어떤 열대어들은 물생활을 한창 할 때 키워 보거나 키우고 싶어하던 것들이었다. 비싸고 대형 물고기가 좀 더 많은 청계천 수족관에 온 느낌이었다.

가오리는 그동안 자본주의의 맛을 보고 인간들이 자기 팬서비스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5분 간격으로 물 밖으로 나와 물을 튀겨 댔다. 피라루쿠의 수명이 궁금해졌다. 큰 물고기들은 보통 10~15년 정도를 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아쿠아리움에 있는 가오리나 상어, 피라루쿠들은 모두 내가 5살 때 본 녀석들과 똑같은 녀석들일 확률이 크다.

우리가 물고기를 구경하고 있으면 물고기들도 눈알을 굴리면서 우리를 봤다. 소름이 끼쳤다.

코엑스는 리모델링을 하고 나서 정말 거지같아졌다. 예전에도 쇼핑몰이었지만, 지금은 베스킨 라빈스도 없고 링코나 반디앤루니스는 거지같이 변질된 한심스러운 쇼핑몰이 되었다. 사람들이 소비를 하는 모습을 보니까 그냥 짜증이 났다. 이제 다시는 안 갈 거다. 수능이 끝나고 나면 내가 살았던 동네들과 어렸을 때 추억이 많은 곳들을 전부 방문해볼 계획이었는데, 이미 두 군데가 더 이상 예전 같지가 않고 진짜 그지같게 변했다. 속상하다. 이제 갈 곳이 별로 없다.



#6.

여름방학 이후 많이 들었던 음악 :

  1. Beyonce - Countdown
  2. Fun - At Least I'm Not Sad (As I Used to Be)
  3. The Last Shadow Puppets - Wondrous Place
  4. Grimes - Oblivion
  5. Grimes - REALiTi
  6. Grimes - Genesis
  7. Halsey - Hold Me Down
  8. Pink Floyd - Time (이건 고3 시작할 때랑, 수능 일주일 앞두고 음악을 끊기 직전이랑, 수능 끝난 직후에 들을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9. The White Stripes - Seven Nation Army
  10. Jake Bugg - Two Fingers
  11. Jolly Roll Morton - The Crave
  12. Led Zeppelin - Stairway to Heaven
  13. Beyonce - Formation
  14. Florence + The Machine - Wish That You Were Here
  15. Ninna Simone - Sinnerman
  16. Rudy Vallee - Deep Night
  17. Duke Ellington - Chl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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