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어의 작은 세계
  • 2015.11.27 19:30

  • 이 작품은 데미안 허스트의 <살아있는 누군가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이다. 몇년 전 텝스 지문에 소개된 난해한 제목이 기억에 남아 구글링해서 알게 된 작품인데, 독특하게만 느껴졌던 것이 최근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과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기에 이렇게 사진을 올린다.


    이 작품을 볼 때면 어릴 적에 자주 갔던 아쿠아리움의 해저터널이 생각난다. 그곳을 지나다니던 상어들은 하나같이 모두 코가 문드러져 있었다. 유리창에 수백 수천 번을 부딪힌 탓이었다. 상어들은 유리창 너머로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다가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수족관의 작은 세상으로 돌아갔다. 상처가 아물 무렵에는 다시 유리창을 부수려다가 실패하고, 그러면 또다시 원래 머무르던 곳으로 돌아가 멍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상어들은 상처만 입었을 뿐 단 한 번도 유리창을 부수지 못했다. 열여덟 살의 나는 그 상어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2015년은 내게 가장 힘든 해였다.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주변 환경도,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사뭇 달라졌다. 예전에는 내가 뭘 하던지간에 모두가 그러려니 하고 봐주었는데, 이제는 세상이 나를 어른으로 대했다. 매몰차게 구는 세상에 상처를 받았다. 사람들의 기대치에 알맞게 나를 맞춰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스스로를 상처 입혔다. 지금 역량으로는 해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 하나 해내지 못하냐며 나를 질책했고, 좌절했다.

    2학년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패닉상태를 겪어봤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한 달 내내 밥 한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시체처럼 지냈다.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해서 나를 미워했고, 그 미워하는 모습이 미워서 또 미워하고.... 올해의 절반 이상을 이렇게 보냈다. 나중에는 내가 무엇 때문에 나 자신을 그토록 미워하는 것인지 이유조차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정말로 원망하는 것이 나인지, 우리 가족인지, 아니면 이 세상인지 알 수 없었다. 

    성적이 잘 안 나와서인 걸까, 아니면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지를 도저히 깨달을 수가 없어서일까? 내가 우울감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이유를 찾아 헤매다가 더 우울해졌다. 

    내가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은, 11월 모의고사를 며칠 앞둔 날 밤이었다. 예비 고3이 된 나에게 아빠가 말했다. 앞으로 남은 1년동안, 너 자신을 믿고, 긍정적인 기운을 내뿜으라고. 이전에도 자주 듣던 말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영문은 알 수 없지만 그 말이 나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다음날 등굣길이 가볍게 느껴졌다.

    '내가 몸부림을 치건 말건간에 '고3'이라는 시기는 찾아오게 되어 있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수능을 잘 보는 것 외엔 없다. 차라리 방법이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 더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 하나만 죽어라 열심히 들이파면 되니까.'

    수족관을 떠돌던 상어가 나를 노려보더니, 유리창을 부수고 나와 내 목을 물어뜯었다. 몸속에서 오래 묵었던 독이 그제야 빠져나왔다.

    시험만 닥치면 매번 뒤집어지던 속이 그날은 멀쩡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시험을 보자 두려움은 싹 가셨다. 찌질한 내 모습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던 시기에는 전혀 받아보지 못한 점수를 받았다. 내겐 이미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에 겁을 먹은 탓에 여태껏 그 가능성을 받아들일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2015년 1월 1일에 내가 세웠던 목표는 책 속의 위인들처럼 자기반성적인 삶을 살면서 나날이 발전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목표를 세울 때 내가 무언가를 잘못 이해했는지, 나는 자기반성이 아닌 자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오늘을 뉘우치면서 내일은 지금보다 더 나아진 내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지 못했다. 한번의 실수에 집착해 제자리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고3이 되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3학년 층으로 교실을 옮겼고 며칠 뒤면 번번팅 후배를 뽑는단다.

    자기가 성취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독해져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이제껏 한 번도 독하게 살아보지 못했던 탓에, 나는 내 안의 독기를 제대로 다스릴 줄을 몰랐다. 내게 있어 독기는, 정말 말 그대로 내 몸을 썩히는 '독'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오랜 시간 나를 죽여오던 내 몸 속의 독소는 모두 빠져나가고 없다. 

    가볍고도 굳은 의지로 남은 1년을 보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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